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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기 않는 믿음, 페리카나 산증인 비인점 이선구 사장 인터뷰

  • 작성일 2012-11-21
  • 조회수 3602


변하기 않는 믿음, 페리카나 산증인

페리카나 비인점 이선구 사장


(2012.11.21) 비인면. 庇仁面. 벼슬비 어질인. 옛날부터 명문이 낙향하여 자리를 정한다 하여 비인(庇仁)이라 불려오던 곳이다. 충남 서천군에 속해 있다. 페리카나 비인점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은 지금으부터 24년전. 당시만 하더라도 충남 서남부 지역에 있었던 가맹점은 서천과 대천 단 두 곳이었다. 작은 마을에서 페리카나를 운영해 자녀 4명 모두를 대학까지 보내고 아직도 청춘처럼 활동하고 있는 비인점을 찾은 것은 늦가을 단풍 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따뜻한 햇살이 남아있는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24년 동안 한 자리에서 페리카나를 운영한 이선구(65) 사장. 요즘은 한 회사에 10년 이상 몸을 담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사장은 오르지 ‘닭집’에서 24년을 보냈다. 24년 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장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지만 장인 보다는 아버지의 푸근한 미소가 더 잘 어울린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페리카나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모습에서 지난 세월을 서둘러 짐작해본다. 페리카나와의 인연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우연이 필연으로


"사실 치킨집을 운영하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개인 택시를 하면서 배가 고파 부여 시내에 있는 페리카나에서 양념치킨을 먹는 순간 신세계를 발견했죠. 이런 치킨도 있구나. 더구나 남은 것을 포장해 준다고 해서 더욱 놀랐죠. 집에 있는 아이들도 너무 맛있다고 난리 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네요."


양념치킨에 매료된 이선구 사장은 두 달만에 개인택시를 처분하고 본격적인 창업 준비에 들어갔다. 그는 사실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가지고 있다. 남자라면 누구나 갔다 와야 하는 군대. 어차피 가야 할 군대였기에 이선구 사장은 남들보다 빠른 19살에 입대해 하사관으로 칠성부대에서 근무했다. 때문에 그는 동기들보다 2~3살 어리다.


이선구 사장의 이런 추진력이 없었다면 비인점은 존재할 수 없었다. 비인면에는 한국전력과 한보철강(현 현대제철)이 있고 육군 제 8361부대, 공군 제 8311부대가 주둔하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편이다. 이곳에서 자랐기에 김선구 사장은 확신했다. 장소는 농협 앞에 있는 친구네 호프집을 권리금 50만원에 사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인테리어.


"인테리어 비용이 1천 400만원이더군요. 80년대에 1천 만원은 상상하기 힘든 금액이죠. 더군다나 내 집도 아닌 다른 곳에 이 금액을 쏟아 부어야 하니 모두가 말리더군요. 하지만 전 자신감이 있었죠. 어렵게 비용을 해결하니 조리교육이 발목을 잡더군요. 가까운 가맹점에서 조리교육을 하기 마련인데 서천점에서 거부하더군요. 아마도 자기 손님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홍성점으로 조리교육을 다녔죠."


어렵게 시작한 페리카나는 개업과 동시에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맛난 양념치킨은 금세 소문이 나 매일같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소위 말해 대박을 터틀였다. 매일 매일 치킨의 고소한 향이 마을을 뒤덮었고 마감시간이 되면 손님들을 내쫓기 바빴다. 이렇게 5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근처에 치킨집이 무려 13개가 문을 열었다.


한우물 파는 진실성


경쟁자가 생기면서 경쟁자들은 비인점과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해 다양한 메뉴를 선보였다. 꼬치구이, 햄버거, 닭똥집, 피자 등. 하지만 이선구 사장은 오르지 치킨 만을 고집했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듯이 닭으로 시작했으니 닭을 잃어버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 신념은 아직도 변함없다.


"치킨 집이 잘 되니 지나가던 닭 차가 방문하더군요. 싸게 줄 테니 우리 닭을 사용하라고. 어느 날은 소스 차가 멈춰 우리 소스를 사용하라고 권하더군요. 아주 혼구녕을 내줬죠. 다시는 오지 말라고. 이런 사재 품목을 쓰면 당장은 좋겠죠. 하지만 소비자들은 금새 알아채고 발길을 돌리죠."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든 일화가 있다. 닭을 사육하는 친구가 어느 날 노계 4마리를 튀겨달라고 부탁했다. 친구의 부탁이라 거절할 수 없어 페리카나 파우더를 이용해 튀겨줬다. 문제는 튀긴 후 바로 먹거나 사람들에게 나눠줬어야 하는데 이틀이 지난 후 동네 어르신을 드린게 화근이었다. 식고 바삭 하지 않고 육질이 질긴 노계를 맛보면서 어디서 튀겼다고 물었고 친구는 페리카나라고 답했다 한다. 어렵게 쌓은 이미지가 땅이 떨어지는 순간이다.


이를 개선하지 위해 이 사장은 부단히 노력했다. 11년간 택시를 몰면서 익힌 서비스 정신으로 다시금 무장하고, 본사에 직접 전화 걸어 무조건 최상 품질의 닭과 소스, 파우더를 주문했다. 돈은 중요치 않았다. 한 번 잃은 신뢰를 되찾기 위해 1년 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본사와 가맹점은 악어와 악어새


"주말마다 집에 내려가는 한전 직원이 있었는데 매일 우리 집에서 치킨을 사갔죠. 집이 군산이었는데 근처 페리카나에 구입해서 먹는 것이 맛있을 거라고 말했죠. 근데 그 직원은 우리 집에서 사가는 것이 더 맛있다고 하더군요. 가맹점마다 맛이 다르다는 것이 이해가 안돼요. 본사에서 내려주는 재료들과 레시피만 지켜주면 분명히 좋은 맛을 낼 수 있는데 조금 아끼자고 다른 것을 사용하니 안타깝죠."


이선구 사장은 가맹점마다 치킨 맛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해하지 않는다. 본사에서 내려주는 지침만 잘 지키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또한 페리카나 원부자재의 경우도 타 경쟁사보다 저렴하니 기본만 해준다면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쉽게 돈을 벌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비인점은 화재를 겪으며 휘청했다. 1999년 셋째가 100일 휴가 나오기 삼일 전, 막내 딸이 수능보기 두 달 전 튀김기 과부하로 화재가 발생했다. 악재는 몰아서 온다고 했던가. 얼마 전 주식으로 큰 돈을 잃어 낙심하던 차에 대형사고가 터진 것이다.


"여기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었죠. 나를 키워 준 곳이 페리카나였기에 다시 페리카나를 선택했죠. 본사에서도 부사장님과 논의 끝에 저렴한 비용으로 재오픈을 도와줬죠."


이 때문일까 이 사장은 본사와 가맹점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본사가 살아야 가맹점이 살고, 가맹점이 살아야 본사가 산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신제품도 모든 가맹점에서 무조건 판매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어렵게 만든 신제품을 가맹점에서 열심히 판매해야 개발자도 신나고 예산도 충당해 더 좋은 신제품을 만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당연히 본사에서도 확실한 마케팅과 제대로 된 신제품을 내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어깨가 무거워졌다.


본사와 가맹점의 건강한 관계를 경험했기에 처남에게도 페리카나를 추천했다. 은행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까 고민중인 처남에게 이선구 사장은 브랜드 인지도와 품질에서 페리카나를 따라올 수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이 사장 처남도 대전 문화동에서 페리카나를 운영 중이다.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이선구 사장은 TV출연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치킨의 변천과정과 성공스토리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이 사장을 소개한 것. 치킨집을 운영하면서 1남 3녀를 반듯이 키운 내용이 전파를 탔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본방송이 아닌 재방송으로 확인했다. 충남 서천이라는 지역 때문에 해당 방송시간에 지역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이다. 자식들 자랑에 한껏 목청을 올린 그는 자식들이 보고 싶은지 아련한 그림자가 얼굴에 드리운다.


우리 조상들이 감나무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도 매한가지다. 감나무는 다른 나무와 다르게 열매를 끝까지 가지고 있는다. 다른 나무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영양분을 차단하고 스스로 지키기를 선택하지만 유독 감나무만이 마지막까지 영양분을 공급해 감을 지킨다. 이선구 사장의 자식 사랑과 페리카나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 주렁주렁 매달린 감을 보며 흐뭇해했던 그의 미소를 가슴에 담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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